* 무역의 날 1829(조선 순조 29) 경희궁 불남 1864(조선 고종 1) 언론인 위암 장지연 태어남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통박하는 '시일야방성대곡' 사설을 황성신문에 게재 장지연은 망국의 울분을 폭음으로 달래며 말년을 보냈다. 1905 고종의 시종무관장 민영환, 을사보호 조약 체결을 개탄하며 자결 1923 대동강 인도교 준공 1926 사단법인 경성방송국 설립 1948 국군조직법 공포, 육군본부 해군본부 설치 1954 민국당 무소속 등 야당계 의원, 호헌 동지회 결성 1963 제1회 청룡상(영화상) 시상 1964 수출의 날 제정 1972 남북조절위 제3차공동위원장회의 개최(서울) 1980 동아 동양 서해 전일방송, 언론통폐합조치로 종방 1981 서울시경, 이윤상군 유괴살해범으로 중학교 체육교사 주영형 검거 발표 1984 정치활동 피규제자 99명중 84명 해제(3차 해금) 민경교통 택시운전사 박종만, 노조탄압에 항의 분신자살 1987 범국민운동추진위, 평화의댐 건설지원 모금액 652억 4천만원 발표 1991 통일교 문선명 교주와 박보희 세계일보사장, 평양방문 1993 한국-일본-대만 3개국 농협중앙회장, 쌀시장 개방불가 공동성명 채택 1993 대검찰청,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구속 외화를 밀반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480만 달러 짜리 호화주택 구입하고 예금계좌를 설치 거래해 온 혐의로 구속됨 1067 사마광, <자치통감> 집필 1835 미국 소설가 마크 투웨인 태어남 "아담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과이기 때문에 그것을 딴 것은 아니다. 금단의 열매였기 때문에 그것을 딴 것이다." 1874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 태어남 1953년 노벨문학상 수상 1885 독일, 마샬 제도 점령 1900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세상 떠남 1911 외몽고 독립선언 1939 소련, 폴란드 침공 1949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 설치 1962 유엔사무총장에 우 탄트 선출 1979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9백년간의 불화 종식 |
절대로 앞으로는 나라를 잃은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
"시일야방성대곡"을 올립니다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 張志淵 황성신문 2,101호(1905. 11. 20)
오늘이여 목놓아 크게 우노라 장지연
曩日 伊藤侯가 韓國에 來하매, 愚我人民이 逐逐相謂曰,
侯는 平日東洋三國의 鼎足安寧을 自擔周旋하던 人이라,
今日 來韓함이 必也我國獨立을 鞏固히 扶植할 方略을 勵告하리라 하여,
自港至京에 官民上下가 歡迎함을 不勝하였더니 天下事가 難測者 多하도다
千萬夢外에 五條件이 何로 自하여 提出하였는고, 此條件은, 非旦我韓이라
東洋三國의 分裂하는 兆漸을 釀出함인즉, 藤侯의 原初主意가 何에 在한고.
雖然이나 我大皇帝陛下의 强硬하신 聖意로 拒絶함을 不已하셨으니 該約의
不成立함은 想像컨대 伊藤侯의 自知自破한 바어늘,
噫, 彼豚犬不若한 所謂 我政府大臣者가, 營利를 希覬하고 假嚇를 恇劫하여
逡巡然觳觫然 賣國의 賊을 甘作하여, 四千年疆土와 五百年 宗社를 他人에게
奉獻하고, 二千萬 生靈으로 他人의 奴隸를 敺作하니, 彼等 逐犬不若한
外大 朴齊純及 各大臣은 足히 深責할 것이 無하거니와, 名爲參政大臣者는
政府의 首揆라, 但以不字로 塞責하여, 要名의 資를 圖하였던가. 金淸陰의
裂書哭도 不能하고 鄭桐溪의 刃剚腹도 不能하고,偃然生存하여 世上에
更立하니, 何面目으로 强硬하신 皇上陛下를 更對하며, 何面目으로
二千萬同胞를 更對하리오.
嗚呼痛矣며 嗚呼憤矣라. 我二千萬爲人 奴隸之同胞여, 生乎아 死乎아.
檀旗以來四千年 國民精神이 一夜之間에 猝然滅亡而止乎아. 痛哉痛哉라.
同胞아 同胞아.
현대어 옮김.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단군.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