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남단 마가야네스 지역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국립공원에 있던 빙하 호수가 정상일 때 모습(위쪽)과 호수의 물이 감쪽같이 사라진 뒤 황량한 모습(아래쪽)이 대조를 이룬다. /AP

20일 칠레의 산림청 직원들이 산티아고 남쪽 마가야네스 지방에 있는 한 호수 바닥을 살펴보고 있다.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국립공원 안의 이 호수에 가득했던 물이 사라진 것은 지난 3~5월 사이 지진으로 호수 바닥이 갈라지면서 물이 빠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본지 6월 22일자 사진 보도〉





#칠레에선 “지진으로 바닥 균열”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약 2000㎞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템파노스 호수. 지난달 27일 이곳을 찾은 산림청 순찰대원들은 눈을 의심했다. 호수의 물은 오간 데 없고 얼음덩어리가 호수 밑바닥에 처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칠레 국립산림청 소속 후안 호세 로메로는 “지난 3월과 4월 이곳을 순찰했을 때만 해도 빙하가 둥둥 떠다니고 있는 등 모든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5월말 순찰 도중 호수가 사라졌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마가야네스 지역의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국립공원에 있었던 이 호수는 축구장 10개를 합한 크기.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자연호수였다. 칠레 정부는 지질학자를 현장에 파견, 원인 분석을 하고 있다. 유력 일간지 ‘엘 메르쿠리오’는 학자들의 말을 인용, ‘호수 바닥에 균열이 생겨 물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균열은 지난 4월 호수 인근의 아이센 지방에 발생한 지진으로 생겼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지에서는 이 설을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앞서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호수 밑바닥의 균열 때문에 호수가 실종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카를로스 팔라시오스 칠레대학 지질학자는 “물을 가둬두는 옹벽 역할을 하던 대형 얼음이 온난화로 녹으면서 붕괴됐고, 이로 인해 물이 지하로 흡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템파노스 호수는 당초 분화구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의 일부는 얼음이 물을 가둬주는 댐 역할을 해왔다. 주(駐)칠레 한국 대사관의 전창조 참사관은 “호수가 사라진 지역에는 빙하호수들이 산재해 있다”며 “일반인들의 호수 접근은 어렵고 산림청 직원과 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자주 방문해 확인해 왔던 곳”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중국 광시성(廣西省)에서도 한 산간마을에 있던 대형 호수가 감쪽같이 사라진 적이 있다. 이 호수에서는 물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일주일 만에 호수가 바닥을 드러냈다.

중국에서 사라진 호수는 칠레의 템파노스 호수 크기와 비슷한 규모로 호수 크기가 약 26만평으로 최대 수심은 20m에 달했다. 마을 주민들은 호수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호수 주변 경치가 수려해 관광지로도 인기였다. 한 주민은 “3월 9일 자정 무렵 대형 욕조에서 물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났으며, 다음날 호수에 가봤더니 수위가 1m정도 내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3월16일 호수는 물 한 방울 없는 황량한 상태로 변했고, 물고기들이 호수에 나뒹굴었다.



#中·러시아선 “동굴로 빨려나가”


중국 재해 전문가들은 “호수 주변은 카르스트(석회암) 지형으로 땅속에 수많은 석회 동굴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 동굴을 통해 물이 빠져 나간 것 같다”고 추정했다. 수리학 전문가인 저우주스는 “호수가 형성된 이후 수압으로 지하의 암반 사이에 틈이 생기고 지하 통로가 생기면서 물이 새나갔을 것”이라며 “이 같은 현상이 주변 지역에서도 몇 차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도 지난 2005년 5월19일 모스크바 동쪽 약 250㎞ 떨어진 니제고로드주(州) 볼로트니코보 마을 대형 호수가 하룻밤새 사라졌다. 당시 러시아 NTV가 ‘호수에 가득 찼던 100만㎥ 물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이변이 발생했다’고 보도한 뒤 세계 톱뉴스로 떠올랐었다. TV 화면에는 진흙 구덩이로 변해버린 호수와 더불어 호수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호수 중심부의 구멍으로 쏠려 있는 모습이 방영됐다. 러시아 비상대책부는 사고 발생 이후 지질·수리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팀을 구성, 호수가 사라진 배경과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난 뒤 연구팀은 문제의 호수가 지하 100m에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질학자 파벨 이바노프는 “호수가 위치한 지형은 구멍 난 치즈 형태의 특수 지형으로 구성돼 있었다”며 “그 중 가장 큰 구멍을 통해 물이 급속도로 지하 동굴로 빨려 들어 갔다”고 말했다. 지하 동굴은 2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호수가 사라지기 전 마을에서는 어느 날 밭이 지하로 푹 내려앉는 경우가 수 차례 있었고, 숲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물이 빠져 들어가기도 했고, 다른 쪽에서는 물이 솟구쳐 올라오는 반대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상한 현상이 자주 발생하자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호수가 사라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호수가 사라진 이유로 ?호수가 지하 동굴과 연결돼 있거나 지진 등으로 균열이 생겨 지하로 물이 흡수되는 경우 ?석회암 등 취약한 암석으로 구성된 호수 바닥층이 물과 반응, 용해되면서 균열을 가져와 물이 빠져 나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행이 최근 사라진 호수들의 경우 땅속으로 물이 흡수돼 큰 피해는 없었지만 호수가 땅속이 아닌 지표면으로 범람할 경우는 대형 재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최근 화산학자와 지질학자들 사이에서는 호수 중에서도 칼데라호(caldera湖·화산폭발로 생긴 대형 호수)를 잠재적인 문제 호수(?)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칼데라호가 자체 침식을 거쳐 범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백두산 천지도 가능성 있다”


손 교수는 백두산 천지(天池)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어느 날 천지에 고인 물이 압록강이나 두만강으로 흘러나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평균 수심(水深) 200m가 넘는 천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느 날 백두산 천지 호수 물이 사라진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정병선 기자 bschung@chosun.com

Posted by 개구리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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